한때 대한민국 보수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층 일부가 최근 예상치 못한 정치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로 진보 성향의 정치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또는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변심이 아닌, 보수 정치의 방향성과 신뢰 기반에 대한 근본적 회의, 나아가 이념 중심 정치의 한계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박근혜 지지자들의 일부가 왜 이재명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지, 그 배경과 의미를 정치적 지형 변화의 맥락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수층 변화의 배경 (박근혜 지지자, 이재명, 정치 지형)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통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보수 진영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인물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상징성과 ‘보수의 순혈성’을 계승한 정치인으로 간주되며, 중장년층, 특히 60대 이상 유권자들 사이에서 강한 지지 기반을 형성했다. 하지만 2016년 촛불 집회와 이어진 탄핵, 2017년 대선 패배,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수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보수 진영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부대’ 또는 ‘박사모’라 불리는 고정 지지층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국민의힘(전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등)의 정치 노선이 박 전 대통령과 일정 부분 거리감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탄핵에 동참한 사실로 인해 내부 분열이 시작됐다. 이들은 "국민의힘은 배신자"라고 간주하며 독립적인 정치 흐름을 추구하거나, 정당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적 냉소주의로 돌아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는 기존 진보 정치인들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싸우는 사람’, ‘기득권에 맞서는 추진력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로 보수 일각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공정”과 “민생”을 강조하는 메시지, 과거 시장·지사 시절 추진력 있는 행정 경험, 정치적 프레임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 등은 기존 보수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권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을 일정 부분 해소시켜주었다. 이재명의 개인적 캐릭터는 기존 진보의 색채를 넘어, ‘정치를 진짜로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박사모의 이재명 지지? (2024 총선, 보수 분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지지자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 SNS 댓글 등을 통해 박사모로 자처하던 일부 인물들이 “이번엔 이재명을 지지하겠다”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는 수적으로 아직 다수는 아니지만, 상징성과 파급력에서 매우 중요한 흐름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의 여당과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와 철학, 즉 박근혜식 보수주의를 전혀 계승하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데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인물들이 윤석열 정부와 여당 지도부 요직에 포진해 있는 상황, 정책적으로도 민생보다는 검찰 조직 중심의 행보가 부각되면서 일부 박사모 진영은 현재 여당에 대해 극도의 환멸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은 박근혜에게 칼을 들이댔던 사람", "국힘은 더 이상 박근혜의 당이 아니다"는 서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보수정당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무너진 상태다.
이러한 와중에 이재명 대표가 보여준 대중정치적 유연성과 공감 능력, 그리고 탄압받는 정치인의 이미지가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있다. 이재명 대표 역시 여러 차례 검찰 수사와 기소를 당하며 ‘정치적 박해’라는 메시지를 강조해왔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서사와 기묘하게 겹치면서 보수 유권자의 감정적 동요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24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보수 유권자들의 실망이 실제 투표로 표출되었음을 보여준다. 수도권을 포함한 주요 지역에서 여당의 참패가 이어졌고, 이는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아닌 ‘성과’, ‘리더십’, ‘정책 실용성’이 새로운 정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일부 박근혜 지지자들의 이재명 지지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한국 정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체성 재편과 세력 재구성의 서막일 수 있다.
정치 지형 변화의 의미 (이재명, 중도보수층, 통합정치)
이재명 대표는 기본적으로 진보 진영의 리더다. 하지만 그가 가진 정치적 전략과 감성적 소통 방식은 단순히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초월한다. 그는 오히려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정치인,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왔으며, 이는 중도 보수 유권자들에게 일정한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과거 대장동 의혹과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민생에 강하다", "정치적으로 싸우는 법을 안다", "우리 편을 지킨다"는 평을 받으며 기존의 정치인과는 다른 대안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이미지는 정치적 프레임보다 행동과 실천을 우선시하는 중도 유권자, 그리고 기존 정당 정치에 환멸을 느낀 보수 지지자에게 어필되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언급하며 보수 유권자의 감정을 존중하려는 자세, 탄핵에 대해 정치적 복수를 주장하지 않은 중립적 태도 등은 그가 진영 논리보다는 통합과 미래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강성 지지층인 ‘개딸’을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중도 확장을 위한 메시지를 조율하고 있으며, 이 전략은 특히 정치 피로감이 높은 유권자층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의 정치 지형은 이와 같은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진영 논리가 무너지고, 정치인의 리더십과 진정성, 국민과의 소통능력이 새로운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박근혜 지지자들의 일부가 이재명 대표에게 마음을 돌리는 현상은 단지 한쪽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정치 세력의 부상과 기존 구도의 재편을 상징한다.
박근혜 지지자들의 일부가 이재명을 지지하게 된 현상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흐름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정치의 종말을 예고하며,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 기준이 ‘이념’이 아니라 ‘실력’과 ‘신뢰’, 그리고 ‘진정성’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피로 속에서도 유권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보다 열린 시각으로 정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기존 프레임을 깨고, 인물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평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유권자의 한 표는 이념이 아닌 신념과 실용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때다.